
한 편의 시에 담긴 미래의 그림자, 다산은 자신의 운명을 미리 시로 써놓았던 걸까?
📜 시 한 구절에 담긴 기묘한 예언
누군가의 글이 그 사람의 미래를 예언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무심코 쓴 시 한 구절이 다음 해 자신의 운명을 정확히 짚어낸다면, 그것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조선 후기 대학자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1794년 8월 5일, 서울 자택의 정원인 죽란(竹欄)에서 쓴 시 한 편이 있습니다. '금정시참(金井詩讖)'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그가 집필한 <여유당전서>에 '추심(秋心)' 연작 중 두 번째 작품으로 실려 있지요.
금정시참(金井詩讖)
정약용
금정(金井)의 찬 기운 벽오동 감싸는데
물 긷는 소리 끊기고 까마귀는 울며 간다.
이제야 알겠네, 해 지고 별 뜨는 즈음
황혼의 시각 보내기 새삼 어려운 줄.
金井寒煙鎖碧梧 聲斷度啼烏
偏知日沒星生際 銷得黃昏一刻殊
* 정약용(丁若鏞·1762~1836) : 조선 후기 시인, 학자.
원문으로는 이렇습니다.
金井寒煙鎖碧梧
汲井聲斷度啼烏
偏知日沒星生際
銷得黃昏一刻殊
이 시에서 다산이 쓴 '금정(金井)'은 단지 궁궐이나 정원에 있는 아름다운 우물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를 쓴 다음 해인 1795년 7월, 다산은 천주교 신자를 비호했다는 혐의로 좌천되어 충청도 금정(金井)으로 발령받게 됩니다. 그것도 금정 찰방이라는 미미한 직책으로 말이죠. 😲
더 놀라운 것은, 금정 역참의 누각 앞에 실제로 벽오동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고 합니다. 시에서 묘사한 '벽오동'이 현실에 그대로 존재했던 것이지요. 마치 다산이 자신의 미래를 미리 보고 시를 쓴 것처럼 말입니다.

🍂 '시참(詩讖)'에 담긴 가을날의 쓸쓸한 예감
이 시가 특별한 이유는 다산이 좌천된 후에 이 시의 제목을 '금정시참(金井詩讖)'이라고 붙였기 때문입니다. '시참(詩讖)'이란 시가 미래의 일을 예언했다는 뜻인데요, 다산은 자신이 금정이란 곳으로 가서 황혼 무렵에 복잡한 심사로 괴로워할 것을 미리 예견했다고 여긴 것이죠.
이 시를 쓸 당시 다산 곁에는 그의 육촌 형인 남고(南皐) 윤규범(尹奎範, 1752~1821)이 있었습니다. 26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시문으로 이름을 떨친 윤규범은 다산의 이 시를 극찬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마도 시의 예술성뿐만 아니라 가을날 황혼의 쓸쓸함이 묘하게 울림을 주었기 때문일 테지요.
이 시에는 가을날 저녁의 쓸쓸한 정취가 담겨 있습니다. 금정(우물)의 찬 기운이 벽오동을 감싸고, 물 긷는 소리마저 끊기니 까마귀만 울며 가는 적막한 풍경. 그리고 다산은 "해 지고 별 뜨는 즈음, 황혼의 시각 보내기 새삼 어려운 줄" 알겠다고 고백합니다.
이 시적 표현이 실제로 1년 후 금정으로 좌천된 그의 심정을 정확히 대변했으니,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는 시인의 예지력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다산이 자신의 운명을 예측했다기보다는, 시를 쓸 당시 이미 불안한 정국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어렴풋이 예감했을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
🌙 금정에서 바라본 초승달의 더딘 발걸음
금정에 도착한 다산은 자신의 예언적인 시에 화답하는 또 다른 시를 짓습니다.
가을바람 벽오동 가지에 불어오니
금정 난간머리에 해 저물 때로다
잠시 역루에서 한 잔 술에 취했거니
방금 뜬 초승달이 발을 더디 지나간다
원문을 보면 이렇습니다.
秋風吹入碧梧枝
金井欄頭日暮時
暫就驛樓成薄醉
一彎新月度簾遲
앞서 쓴 시가 현실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다산은 벽오동 가지에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처지를 돌아봅니다. 저물어가는 해처럼 자신의 관직 생활도 황혼을 맞이한 듯하여 한 잔 술로 쓸쓸함을 달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 "방금 뜬 초승달이 발을 더디 지나간다"는 표현이 가슴을 저립니다. 좌천된 신세에 시간조차 더디게 흐르는 듯한 고독감을 절묘하게 표현했으니까요. 달의 움직임이 늦게 느껴지는 것은 결국 다산의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일 테지요.
그 시간 속에서 다산은 '세상만사가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운명에 대한 깊은 생각에 빠졌다고 합니다. 자신이 무심코 쓴 시의 구절이 현실이 된 신비로운 경험을 통해,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운명에 대해 사색했을 테니까요.
💭 시인의 예지력, 아니면 운명의 장난?
다산 정약용은 당대 최고의 실학자로서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맨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지성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미래를 시로 예언했다는 것은 어쩌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어쩌면 예민한 시인의 직관이 미래를 감지한 것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다산은 이미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천주교 신자들과 교류했던 그에게 정치적 위기가 찾아올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 불안한 직감이 '금정'이라는 단어와 '황혼의 시각'이라는 표현으로 시에 스며들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금정'이라는 지명의 역참으로 좌천되고, 그곳에 벽오동 나무까지 있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신비롭게 다가옵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일이 이미 정해져 있고, 시인은 그저 그것을 미리 읽어낸 것처럼 말이죠.
🌠 황혼녘의 시간, 다산에게 가장 괴로웠던 순간
금정 찰방으로 좌천된 후, 다산에게 가장 괴로웠던 시간은 해가 지고 별이 뜨는 황혼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관직에서 밀려나 한가로운 시골에 있는 자신의 처지를 해가 저물어 가는 모습과 겹쳐 보았기 때문일 테지요.
그러나 다산의 삶은 좌천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금정으로의 좌천은 그의 파란만장한 유배 생활의 서막에 불과했지요. 이후 다산은 정조의 승하와 함께 신유박해로 강진에서 18년의 긴 유배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유배지에서 다산은 500여 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을 남기며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로 우뚝 섰습니다. 그의 천재적인 식견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의 명저로 꽃피웠지요. 인생의 황혼처럼 보였던 순간이 오히려 그의 학문적 성취의 시작점이 된 셈입니다.
"이제야 알겠네, 해 지고 별 뜨는 즈음, 황혼의 시각 보내기 새삼 어려운 줄."
이 시구는 다산이 미래를 예견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시인의 감성이 우연히 현실과 맞아떨어진 것일까요? 이에 대한 답은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다산이 자신의 불운한 처지를 시로 승화시켰다는 점, 그리고 그 시련 속에서도 끝내 자신의 학문과 사상을 꽃피웠다는 사실이지요. 황혼이 지나면 밤이 오고,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듯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황혼의 시간, 그 순간이 쓸쓸하고 괴롭더라도 그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다산의 삶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230년 전 다산의 시가 우리에게 전하는 진짜 메시지가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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