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경제사] 1930년대 초 소련의 스탈린 정권이 초래한 우크라이나 대기근(홀로도모르)의 충격적 실상과 그 배경을 탐구합니다.
🌾 천국이 지옥으로: 곡창지대의 비극
우크라이나는 예로부터 '유럽의 빵바구니'라 불릴 만큼 비옥한 흑토지대를 자랑합니다. 대충만 지어도 대부분 풍년이 들던 이 옥토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던 축복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초, 이 천혜의 땅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기아의 현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비극의 시작은 레닌의 사망 후 권력을 잡은 스탈린의 계획경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스탈린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자유시장경제를 뛰어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방법은 농민에게서 잉여농산물을 강제로 수취해, 일부는 외국에 팔아 기계를 수입하고 나머지로는 노동자계급의 식량을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 계획된 재앙: 스탈린의 대기근 정책
강제적 곡물 징수의 시작
1931년, 소련 전체의 곡식 징수 목표가 확정되었을 때 가장 많은 할당량을 부여받은 곳이 바로 우크라이나였습니다. 비옥한 땅을 가진 만큼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반혁명 분자로 몰려 숙청당하지 않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공산당 간부들은 무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농민들이 다음 해 파종을 위해 별도로 보관하던 종자용 곡식마저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악순환의 시작
종자를 빼앗긴 농민들은 다음 해 봄에 파종을 할 수 없었고, 당연히 가을 추수도 없었습니다. 식량 부족은 기아로, 기아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스탈린은 식량 수출을 몇 달만 중단하거나 약 300만 톤에 달하는 비축 곡물을 풀었다면 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태를 매우 독창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사회주의가 성공하면 적들도 필사적으로 저항하기 마련이고, 우크라이나인들은 사회주의를 혐오한 나머지 가족을 고의로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 인간성의 파괴: 기아의 참상
생존을 위한 끔찍한 선택들
기아가 심해지자 우크라이나에는 두 종류의 부모가 생겨났습니다: 자기 살을 자식에게 양도한 부모와 자식의 살로 삶을 이어간 부모. 이것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굶주림이 극에 달하자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 한 농민은 스스로를 매장하기 위해 미리 파놓은 묘지로 갔지만, 그곳에는 이미 다른 시체가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또 다른 무덤을 파고 몸을 뉘어 죽음을 기다렸습니다.
- 한 아버지는 '입 하나를 줄이겠다'며 두 자식 중 한 명을 생매장하기 위해 길을 나섰는데, 돌아와 보니 다른 아이도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천륜의 파괴
더 끔찍한 것은 극단적인 기아 상태에서 인간의 본능이 천륜마저 무너뜨리는 장면들이었습니다:
- 일부 가족들은 그중 가장 약한 구성원을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 어떤 어머니는 자신과 딸의 식사를 위해 아들을 요리했습니다.
- 친척들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한 소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버지가 자신을 잡기 위해 칼을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1933년 6월, 우크라이나의 한 여의사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직은 식인종이 되지 않았어. 하지만 네가 이 편지를 볼 때쯤이면 어떨지 모르겠다."
가장 충격적인 사례
이 시기에 발생한 가장 충격적인 사례 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마을에서는 식인종들로부터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아이들을 한곳에 모아 밖에서 자물쇠까지 채워놓고 키웠습니다. 하루는 아이들이 조용하기에 들여다봤더니, 아이들이 그중 가장 약하고 어린 아이를 잡아먹고 있었습니다.
부모들을 경악하게 한 것은 식량으로 선택된 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자신의 찢긴 몸에서 피를 빨아 먹는 동안, 그 아이 역시 제 몸에서 떼어낸 살 조각을 우물우물 씹고 있었던 것입니다.
📊 홀로도모르의 실상과 논쟁
의도된 대량학살인가?
'홀로도모르(Holodomor)'는 우크라이나어로 '기아에 의한 살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용어 자체가 이 기아가 단순한 자연재해나 정책 실패가 아닌, 의도적인 대량학살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실제로 많은 역사학자들은 스탈린이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적 열망을 꺾고 소련의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기아를 초래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일부 학자들은 이를 정책 실패의 결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소련의 부인
이 참상이 실제로 발생했느냐는 질문에 소련 당국은 "기아 같은 건 없으며, 다만 영양부족 때문에 전염병이 번져 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것"이라고 대꾸했습니다. 이는 명백한 현실 왜곡이었습니다.
스탈린은 이 사태에 대한 보도를 철저히 통제했고, 참사 소식을 서방으로 내보내 소련을 고립시키려는 시도를 '인민의 적'에 의한 것으로 간주하여 증오했습니다.
공식 인정과 추모
소련 붕괴 이후, 독립 우크라이나는 홀로도모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집단학살로 규정했습니다. 매년 11월 넷째 토요일은 홀로도모르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의 날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2022년 기준으로 약 16개국이 홀로도모르를 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 공식 인정하고 있으며, 그 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 역사의 교훈: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이데올로기의 위험성
홀로도모르는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기본적 가치와 생명 존중보다 우선시될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경고입니다. 스탈린의 사회주의 건설 의지는 수백만 명의 목숨보다 중요했습니다.
잊혀진 비극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당시의 식인 이야기를 쉬쉬하며 절대 입에 올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너무 끔찍한 비극은 때로 침묵 속에 묻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는 것은 유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홀로도모르와 같은 비극이 세계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현대의 함의
오늘날 우크라이나가 겪고 있는 고난은 90년 전 그들이 겪은 홀로도모르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인류가 과거의 실수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비극일 수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 민족의 자결권, 그리고 국제 사회의 연대와 책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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