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젝트 중간 발표였다. 팀장이 임원들 앞에서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반응이 좋았다. 임원이 물었다. "언제까지 가능합니까?" 팀장은 자신 있게 답했다. "3개월이면 됩니다." 회의실을 나오며 팀원이 속삭였다. "팀장님, 3개월은 무리 아닙니까?" 팀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말했잖아. 이제 기호지세야. 해내든지, 망하든지 둘 중 하나지." 이것이 바로 기호지세(騎虎之勢)다.
기호지세의 의미
기호지세는 말 탈 기(騎), 범 호(虎), 조사 지(之), 기세 세(勢)로 이루어진 사자성어다. 직역하면 "호랑이를 타는 기세"지만, 실제 의미는 전혀 용감하지 않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면 무서워서라도 계속 달려야 한다. 중간에 내리는 순간 호랑이 밥이 되기 때문이다. 즉 이미 시작한 일이라 도중에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을 뜻한다.
남북조 시대 말, 북주(北周)의 황제가 죽자 한족 출신 재상 양견(楊堅)이 정권을 장악했다. 그는 무관으로 큰 공을 세워 북제를 복속시켰고, 자신의 딸을 황제의 사위로 삼았다. 황제가 죽고 어린 정제가 즉위하자 양견은 한족 대신들과 부인의 세력을 규합해 모반을 계획했다.
이때 양견의 부인이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맹수를 타고 달리는 형세이므로 도중에 내릴 수는 없습니다. 만일 내린다면 맹수의 밥이 될 터이니 끝까지 달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디 뜻을 이루시옵소서." 양견은 격렬하게 저항하는 황제 측 세력을 물리치고 모반에 성공했다. 그는 문제(文帝)가 되어 수(隋)나라를 건국했고, 8년 후에는 남조의 진(陳)까지 복속시켜 천하통일을 이뤘다.
기호지세의 현대적 의미
기호지세는 현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다. 창업이 대표적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한 순간,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이다. 3개월 후 사업이 안 풀려도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력서에 공백이 생겼고, 자금은 이미 투입했다. 성공하든지, 더 버티든지 선택해야 한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식 날짜를 잡고 청첩장을 돌린 순간, 기호지세가 시작된다. 중간에 "이 사람이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어도 쉽게 취소할 수 없다. 하객들에게 알렸고, 예식장 계약금을 냈고, 양가 부모님이 기뻐하신다.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호랑이 등이다.
대출도 그렇다. 집을 사려고 은행에서 5억을 빌렸다. 금리가 오르고 월급이 줄었다. 하지만 이미 집을 샀고 대출을 받았다. 팔면 손해고, 안 팔면 이자에 허덕인다. 이것도 기호지세다. 시작할 때는 괜찮아 보였는데, 타고 나니 내릴 수가 없다.
기호지세를 피하는 법
첫째, 타기 전에 생각한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 전에 "정말 끝까지 갈 수 있나?" 자문한다. 창업하기 전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본다. "1년간 수입이 없어도 버틸 수 있나?" "빚을 갚을 수 있나?" "재취업이 가능한가?" 답이 "아니오"라면 타지 않는다.
둘째, 작게 시작한다. 처음부터 큰 호랑이를 타지 않는다. 퇴사하기 전에 부업으로 테스트한다. 전세금 다 털기 전에 소액으로 투자해본다. 작은 호랑이는 중간에 내려도 큰 상처를 입지 않는다. 안 되면 빨리 내린다.
셋째, 탈출구를 만든다. 기호지세에 빠져도 비상구는 있다. 사업이 안 되면 폐업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빨리 접는다. 대출이 과하면 집을 판다. 손해지만 파산보다 낫다. 결혼이 정말 잘못됐다면? 식 올리기 전에 취소한다. 부끄럽지만 불행한 결혼보다 낫다.
기호지세의 역설
재미있는 점은 양견의 기호지세는 성공했다는 것이다. 모반은 위험했지만 수나라를 세웠고 천하를 통일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서 끝까지 달렸더니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즉 기호지세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배수진을 치는 전략이기도 하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그렇다. 퇴사하고 전재산을 투입하는 순간 기호지세다. 하지만 그 절박함이 성공의 동력이 된다. 뒤가 없으니 앞으로 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성공한 창업자 중 많은 이가 "퇴로를 끊었기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문제는 판단이다. 이 호랑이가 목적지로 가는 호랑이인가, 절벽으로 가는 호랑이인가. 양견의 호랑이는 전자였다. 하지만 그가 세운 수나라는 32년 만에 망했다. 고구려 원정에서 을지문덕에게 참패(살수대첩)한 것이 결정타였다. 양견의 아들 양제가 탄 호랑이는 후자였던 셈이다.
당신의 호랑이는?
지금 당신이 타고 있는 호랑이가 있는가?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둘 수 없는 일이 있는가? 먼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이 호랑이는 어디로 가고 있나?" "끝까지 갔을 때 내가 원하는 곳에 도착하나?" "아니면 절벽에 떨어지나?"
목적지로 가는 호랑이라면 악착같이 타고 가라. 중간에 흔들려도 포기하지 마라. 양견처럼 부인(또는 동료, 가족)의 격려를 받아 끝까지 달려라. 하지만 절벽으로 가는 호랑이라면? 손해를 감수하고 내려라. 다치더라도 죽는 것보단 낫다.
기호지세는 선택이다. 타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탄 후에는 목적지를 확인하며, 절벽이 보이면 용기 내어 뛰어내린다. 그것이 호랑이를 타는 현명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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