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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키우는 이야기/고사성어

"문외한" - 전문가 아닌 척하는 것도 기술이다

by 남조선 유랑민 2025.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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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외한" - 전문가 아닌 척하는 것도 기술이다

 

회의실에 IT 부서 사람들이 모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쿠버네티스로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를 구현하고..." 마케팅 팀장이 손을 들었다. "죄송한데, 저는 이쪽 문외한이라 쉽게 설명해주시면 안 될까요?" 순간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모두 알아듣는 척하고 있었는데, 용기 내서 물어본 것이다. 그 한마디로 회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것이 바로 문외한(門外漢)을 제대로 아는 사람의 태도다.

문외한의 의미

문외한은 문 문(門), 바깥 외(外), 사나이 한(漢)으로 이루어진 사자성어다. 직역하면 "문 밖의 사람"이지만, 여기서 문(門)은 단순한 문이 아니라 전문 분야를 뜻한다. 즉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이 없거나 관련이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한(漢)은 본래 강 이름이지만 '사나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이 한(漢)자가 들어간 단어를 보면 재미있다. 일정한 직업 없이 떠돌며 불량한 짓을 일삼는 자는 무뢰한(無賴漢), 불교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성자는 아라한(阿羅漢), 악한 짓을 행한 자는 악한(惡漢)이라고 한다. 모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로 쓰인 것이다.

문외한이라는 인정의 힘

현대 사회에서 문외한임을 인정하는 것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회의에서 "저는 이쪽 문외한인데요"라고 말하는 순간, 세 가지 일이 벌어진다.

첫째, 전문가가 쉽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전문 용어 남발이 멈추고 핵심만 간추려 말한다. 실제로 마케팅 팀장이 손을 든 후, IT 부서장은 "쉽게 말하면 여러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입니다"라고 다시 설명했다. 10분간의 전문 용어보다 이 한 문장이 더 유용했다.

둘째, 다른 사람도 안도한다. 회의실에 있던 사람 중 절반은 사실 못 알아듣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아는 척했다. 한 사람이 용기 내서 물어보면 나머지도 편해진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셋째, 신뢰가 쌓인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사람보다, 모르는 걸 솔직히 인정하는 사람이 신뢰받는다. 특히 리더일수록 그렇다. 모든 걸 아는 척하는 임원보다 "이 부분은 제가 문외한이니 전문가 의견을 듣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임원이 존경받는다.

문외한의 올바른 사용법

문외한이라는 말을 쓸 때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회의 막바지에 "저는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네요"라고 말하면 회의를 방해하는 사람이 된다. 초반에 "제가 이 분야는 문외한이라 기초부터 설명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또한 문외한임을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면 안 된다. 신입사원이 "저는 엑셀 문외한이라 못 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무능해 보인다. 대신 "엑셀은 문외한이지만 배우겠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보면 될까요?"라고 하면 적극적으로 보인다.

전문가 앞에서 문외한 행세도 전략이다. 의사가 어려운 의학 용어로 설명할 때, "저는 의학 문외한이니 초등학생한테 설명하듯 해주세요"라고 하면 명확한 답을 듣는다. 변호사, 회계사, 기술 전문가 모두 마찬가지다. 문외한임을 당당히 밝히면 전문가가 쉽게 설명할 의무를 느낀다.

문외한과 전문가의 균형

재미있는 사실은 진짜 전문가일수록 다른 분야에서는 기꺼이 문외한이 된다는 점이다. 노벨상 수상자도 자기 분야 아닌 곳에서는 "저는 이쪽은 문외한입니다"라고 말한다. 오히려 어중간한 사람일수록 모든 분야에서 아는 척한다.

스티브 잡스는 기술 문외한이었지만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사용자 입장에서 이해가 안 됩니다. 더 쉽게 만들어주세요"라고 엔지니어들에게 요구했다. 그 덕분에 아이폰이 직관적이 되었다. 워렌 버핏은 "IT는 제 전문 분야가 아닙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며 기술주를 피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 전문가의 자세다.

현대 사회의 문외한

요즘은 모든 분야가 전문화되고 있다. 같은 의사도 세부 전공이 다르면 서로 문외한이다. 개발자도 프론트엔드와 백엔드가 다르고, 변호사도 분야별로 나뉜다. 모든 걸 아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건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과, 다른 분야에서는 기꺼이 문외한이 되는 것이다.

SNS에서도 문외한을 인정하는 사람이 신뢰받는다. "저는 이 분야 문외한이지만 제 경험으로는..."이라고 시작하는 글이 "내가 전문가로서 말하는데..."보다 설득력 있을 때가 많다. 겸손함이 진정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회의에서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망설이지 말자. "저는 이 부분 문외한인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자. 그 한마디가 회의의 질을 바꾸고, 당신의 이미지도 바꿀 것이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것보다 모르는 걸 인정하는 게 더 현명하다. 그것이 진짜 전문가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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