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역사는 흔히 위대한 왕, 용맹한 장군,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죠. "테베를 건설한 왕은 누구인가?", "갈리아를 정복한 시저는 얼마나 위대한가!" 하지만 잠깐, 정말 그들 혼자서 그 모든 것을 해냈을까요? "만리장성을 다 쌓은 날 저녁,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처럼 날카롭고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 이가 있습니다. 바로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입니다. 그의 시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역사 기록의 이면에 숨겨진 진짜 주인공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오늘은 브레히트의 시를 통해 역사책 속 스포트라이트 뒤편을 함께 살펴보시죠! 🕵️♀️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에는 왕들의 이름만 적혀 있다.
왕들이 바윗덩어리들을 날랐을까?
그리고 여러 번 파괴되었던 바빌론-
누가 일으켜 세웠을까? 건축노동자들은
황금빛 도시 리마의 어떤 집에 살았을까?
만리장성을 다 쌓은 날 저녁,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을까?
(… 중략 …)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시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취사병 한 명은 데리고 있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왕은 그의 함대가 침몰하자
울었다. 그 말고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서 이겼다. 그 말고
또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십 년마다 한 명씩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을까?
이렇게 많은 사실들,
이렇게 많은 의문들.
*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 : 독일 극작가이자 시인.
역사책엔 왕의 이름만? 브레히트의 촌철살인 질문들 🎯
브레히트의 시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은 마치 호기심 많은 아이의 질문처럼 시작하지만, 그 속에는 역사를 바라보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 "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에는 왕들의 이름만 적혀 있다. 왕들이 바윗덩어리들을 날랐을까?"
- "여러 번 파괴되었던 바빌론 – 누가 일으켜 세웠을까? 건축노동자들은 황금빛 도시 리마의 어떤 집에 살았을까?"
- "만리장성을 다 쌓은 날 저녁,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을까?"
-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 "시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취사병 한 명은 데리고 있지 않았을까?"
- "스페인의 필립왕은 그의 함대가 침몰하자 울었다. 그 말고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서 이겼다. 그 말고 또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어떤가요? 마치 당연한 듯 여겼던 역사적 사실들이 새롭게 보이지 않나요? 브레히트는 승리의 기록 뒤에 가려진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를 끄집어냅니다. "승리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라는 질문에 이르면, 우리는 화려한 역사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이름 없는 이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질문을 던진 브레히트, 그는 누구인가? (feat. 낯설게 하기)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단순히 시니컬한 질문만 던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시대를 비판하고, 기존의 가치관에 끊임없이 도전했던 지식인이었죠. 제지 공장 아들로 태어나 의학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곧 문학의 길로 들어서 시와 연극에 매진했습니다.
특히 그의 연극에서 사용된 '낯설게 하기(Verfremdungseffekt)' 기법은 매우 유명한데요. 관객들이 극에 완전히 몰입해 감정적으로 동화되기보다는, 한 걸음 떨어져서 비판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만드는 연출 기법입니다. 마치 "자, 이건 연극입니다. 현실을 한번 비판적으로 돌아보시죠!" 라고 말을 거는 듯하죠.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그는 나치즘을 피해 15년이 넘는 긴 망명 생활을 떠나야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희곡 '제3제국의 공포와 참상',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 등은 바로 이 불안정한 망명 시기에 탄생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사회주의자로 분류되어 그의 책들이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해금된 이후로는 많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승리의 만찬 뒤엔 누가? "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을까?"
브레히트의 시는 단순히 "다른 사람도 있었어!"라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묻습니다.
"십 년마다 한 명씩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을까?"
이 질문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거대한 건축물, 위대한 정복 전쟁, 화려한 승리의 역사 뒤에는 언제나 그 비용을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물질적 비용뿐만 아니라,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 그리고 목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브레히트를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독일 시인"이라고 극찬했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그의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의 시는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의 감청을 다룬 영화 <타인의 삶 (Das Leben der Anderen, 2006)>에 인용되어 다시 한번 큰 주목을 받기도 했죠.
시대를 넘어 울리는 목소리,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한 질문 ✨
브레히트의 시는 쓰인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화려한 성공 신화 뒤에 가려진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 전쟁 영웅담에 묻힌 이름 없는 병사들의 희생.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는 그렇게 쓰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많은 사실들, / 이렇게 많은 의문들."
브레히트의 마지막 구절처럼, 우리도 때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의 모습에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과 평화 뒤에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땀과 희생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 행간에 숨겨진 이름들을 한번쯤 떠올려보는 것, 그것이 바로 브레히트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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