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이 엊그제 같은데요,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에 주고받았던 카네이션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과 감사의 상징으로 여기는 이 화려한 카네이션의 조상이, 사실은 우리 주변 들판에서 꿋꿋하게 피어나는 소박한 들꽃 '패랭이꽃'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심지어 이 패랭이꽃에는 한 충신의 비극적이고도 꼿꼿한 삶의 이야기가 얽혀 있답니다. 오늘은 카네이션에 담긴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
초야에 핀 선비의 꽃, 패랭이꽃 이야기 🌸
먼저, 고려시대 문신 정습명(鄭襲明)이 쓴 '패랭이꽃(石竹花)'이라는 시를 만나보시죠.
패랭이꽃(石竹花)
사람들은 모두 붉은 모란을 좋아해 (世人皆愛牡丹紅)
뜰 안 가득 심고 정성껏 가꾸지만 (滿園栽植看幾叢)
누가 잡풀 무성한 초야에 (豈知荒野草莽裏)
예쁜 꽃 있는 줄 알기나 할까. (亦有此花香冉冉)...(중략)
외진 땅에 있노라니 찾는 귀인 적어 (地僻罕有貴人賞)
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붙이네. (姿艶空隨田父儂)
정습명(鄭襲明, ?~1151) : 고려 문신.
세상 사람들이 모두 화려한 모란에만 주목할 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거친 들판에서 홀로 향기를 뿜어내는 패랭이꽃. 시인은 이 꽃에 자신의 처지를 빗대었습니다. '패랭이꽃'이라는 이름은 꽃 모양이 옛 서민들의 모자인 '패랭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는데요, 이름처럼 소박하고 서민적인 매력을 지닌 꽃이죠. 또한, 줄기에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어 '석죽화(石竹花)'라고도 불린답니다.
한 편의 시로 출세하고, 충심으로 스러져간 정습명의 삶 ✒️
놀랍게도, 이 한 편의 시는 정습명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는 포은 정몽주의 10대조로,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지만 그를 알아주는 이가 드물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홀로 이 시를 읊으며 한탄하는 것을 임금(고려 예종)이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의 재능에 감탄하여 그를 특별히 발탁했습니다. 그야말로 '출세작'이 된 셈이죠.
이후 그는 예종과 인종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고, 훗날 왕위에 오르는 의종의 스승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의종은 왕이 된 후, 향락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정습명은 스승으로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의 귀는 이미 간신들의 달콤한 말에만 열려 있었죠.
결국 왕의 미움을 사게 된 정습명은 더 이상 임금을 바른길로 이끌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관복을 벗고 독약을 마셔 생을 마감합니다. 자신의 신념과 충심을 죽음으로 지킨 것입니다. 훗날 무신정변으로 쫓겨나게 된 의종은 "정습명이 살아 있었다면 내가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겠는가"라며 뒤늦게 탄식했지만, 이미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런 비극을 예견이라도 한 듯, 패랭이꽃의 꽃말은 '정절'입니다. 암술과 수술이 꽃잎 속에 숨어 있어 붙여진 꽃말이라고 하는데, 왕을 향한 변치 않는 충심으로 스러져간 정습명의 삶과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알고 보니 한 집안? 패랭이꽃과 카네이션의 비밀 😲
자, 이제 이 슬프고도 강직한 패랭이꽃과 우리가 아는 카네이션의 연결고리를 찾아볼 시간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바로 패랭이꽃이 서양으로 건너가 개량된 것이 카네이션입니다! 거친 들판의 소박한 들꽃이 화려하고 풍성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죠.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전통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07년, 미국의 '안나 자비스'라는 여성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흰 카네이션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요.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고, 우리나라에 전해져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에 감사를 전하는 꽃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카네이션을 볼 때, 패랭이꽃의 정신을 떠올려보세요 ❤️
최근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을 보내며 주고받았던 카네이션을 다시 한번 떠올려 봅니다. 그 화려한 꽃송이 안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도 묵묵히 제 몫의 아름다움을 피워냈던 패랭이꽃의 소박한 정신이, 그리고 불의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절개를 지켰던 한 충신의 꼿꼿한 마음이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
다음 기념일에는 카네이션을 선물하며 이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는 것은 어떨까요? 단순한 감사의 표시를 넘어, 우리 들꽃에 얽힌 깊고 아름다운 의미까지 함께 나누는 더욱 특별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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