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원하는 건 뭐든지 있다."
어두운 밤, 뉴욕의 한 창고 근처에서 한 남자가 작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에게 던진 이 한마디는 현대 연극의 명작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단 두 명의 등장인물(딜러와 손님), 오직 대화만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인간 욕망의 본질과 관계의 역학을 파고들며 우리 일상 속 보이지 않는 거래의 본질을 파헤칩니다. 🎭
욕망의 딜러, 무욕의 손님
콜테스의 희곡은 별다른 무대 지시 없이 두 인물의 언어적 충돌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딜러는 끊임없이 "당신이 원하는 것이 내게 있다"라고 주장하고, 손님은 계속해서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라고 부정합니다.
딜러의 대사를 살펴볼까요?
"당신이 이 시간에 이런 동네를 돌아다니는 이유는 당신이 갖고 있지 않은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내게 요구할 것을 내가 이미 갖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저 내게 요구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에 대한 손님의 반응은 어떨까요?
"나는 어떤 특정한 장소와 시간 속을 걷고 있는 게 아닙니다. 단지 개인적인 일 때문에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움직이며 걸어가고 있을 뿐이지요. 내겐 당신에게 제안할 것도, 욕망도 없습니다."
무언가를 팔려고 안달인 사람과 아무것도 사고 싶지 않은 사람의 이 기묘한 대화는, 왜 이토록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걸까요? 🤔
'딜(Deal)'의 본질
작품의 첫머리에서 콜테스는 '딜'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딜은 '금지되거나 엄격하게 통제되는 가치를 취급하는 상거래'이며, 약속된 신호들과 이중의 의미를 지닌 대화를 통해, 주로 상가가 문을 닫을 무렵에 이루어진다.
이 정의에서 눈여겨볼 점은 '금지되거나 엄격하게 통제되는 가치'라는 표현입니다. 딜러가 팔려는 것은 단순한 상품이 아닌, 어쩌면 사회적 금기나 욕망과 연관된 무언가일 수 있습니다. 마약일 수도 있고, 섹스일 수도 있고, 또는 인간 관계나 소속감처럼 더 추상적인 것일 수도 있죠.
딜러는 무엇을 팔고 있는지 끝까지 말하지 않습니다. 이 모호함이 작품의 긴장감을 높이고,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
장사꾼과 소비자의 심리학
작품 속 딜러의 대사는 현대 마케팅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장사꾼이 예의를 갖출수록, 손님은 더 삐딱하게 나오기 마련이지요. 모든 장사꾼은 자신이 아직 알지 못하는 욕망까지도 만족시켜주려고 애쓰는 반면, 손님들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제안하는 것을 언제든지 거절할 수 있다는 데서 가장 큰 만족감을 느끼곤 하니까요."
이 문장을 읽으며 우리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광고와 마케팅 메시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당신은 이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광고들. 우리 모두는 그 메시지에 "아니요, 저는 그것이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그 거절의 자유에서 묘한 만족감을 느끼죠.
하지만 소비사회 속에서 우리가 정말 그 자유를 누리고 있는 걸까요? 아마도 콜테스가 던지고 싶었던 질문이 아닐까 합니다. 💭
두 개의 제로가 되자는 제안
손님은 딜러에게 이런 제안을 합니다:
"그저 잠시 나란히 놓여 있다가 각자의 방향으로 굴러가는 그런 두 개의 제로가 되자."
이 대사는 작품의 핵심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서로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 두 사람.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관계란 과연 무엇인지 묻는 듯합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거래의 형태로 변질되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는 '제로'의 관계는 가능할까요?
손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정의할 수 없는 시공간인 이 시간과 이 장소의 끝없는 고독 속에서 모두가 혼자라고 생각한다."
목화밭의 고독. 우리 각자가 경험하는 존재의 고독감. 이 작품의 제목이 왜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인지 이 대사에서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
현대 사회의 거울로서의 '딜'
"내게 아무것도 제안하지 않았단 말입니다?"라는 딜러의 마지막 절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베르나르마리 콜테스는 1989년, 불과 41세의 나이에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작품은 30개 언어로 번역되어 47개 국가에서 공연되었고, 특히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이 작품이 오늘날까지 널리 공연되고 읽히는 이유는, 아마도 현대 사회의 본질적인 관계의 형태를 예리하게 포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팔고 무언가를 사며 살아갑니다. 물건뿐만 아니라 시간, 노동력, 관심, 사랑까지도 거래의 대상이 되는 세상에서, 진정한 인간관계는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요?
짧은 글의 긴 여운
오늘날 짧고 의미 없는 말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콜테스의 밀도 높은 대사는 특별한 울림을 줍니다. 빠른 속도의 자극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이 희곡은 천천히 음미하며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딜러와 손님의 대화는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리지만, 그 교차하지 않는 대화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욕망을 강요하는 딜러로서의 나, 또는 모든 욕망을 부정하는 손님으로서의 나. 🔄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의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는 단 70페이지의 짧은 희곡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 욕망과 관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오랫동안 독자의 마음속에 남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파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사는 사람입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과연 진정한 관계, '두 개의 제로'로 만날 수 있을까요?
당신도 이 희곡을 읽으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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