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 🧠
이 중국 속담은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이 통용되는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세금을 내라는 국가와 이를 피하려는 백성 사이의 숨바꼭질은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니었네요. 한나라 시대 일어났던 세계 최초의 '부자세' 도입과 그 실패 사례를 통해 현대 조세정책의 근본적인 딜레마를 들여다봅시다.
🏛️ 한 무제와 상홍양: 고대판 '세금 개혁'의 시작
기원전 110년, 한나라 무제는 낙양 출신의 상인 상홍양(桑弘羊)을 발탁해 국가 재정을 맡겼습니다. 마치 현대의 재무장관이나 국세청장 같은 자리죠. 그런데 흥미로운 건 무제가 굳이 '상인 출신'을 이 자리에 앉혔다는 점입니다. 당시 중국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엄격한 신분 체계 속에서 상인은 가장 낮은 계층이었어요.
상홍양은 기존 체제에서 벗어난 혁신적인 재정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의 대표작 <염철론(鹽鐵論)>은 당시 경제 사상을 담은 책인데, 재정, 외교, 도덕, 철학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었죠. 하지만 핵심은 '국가 재정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에 있었습니다.
💰 염철전매: 국가 독점의 시작
당시 한 무제의 고민은 현대 정부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군사비는 계속 증가하는데, 재정은 한정되어 있었죠. 이미 농민들에게서 거둘 수 있는 세금은 한계에 달했고, 새로운 세원이 필요했습니다.
상홍양의 해법은 '염철전매(鹽鐵專賣)'였습니다. 소금과 철을 국가에서 독점하는 제도였죠. 이는 현대의 담배나 주류에 대한 국가 통제와 비슷한 맥락이었습니다. 수익성 높은 품목을 국가가 직접 관리해 재정을 확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국고가 빠르게 채워졌으니까요. 그러나 곧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 💸 지출 증가: 수입이 늘자마자 씀씀이도 커졌습니다. (현대 정부의 예산 팽창과 닮았네요)
- 🌊 자연재해: 태행산 동부 지역에서 대홍수가 발생해 농민 70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 ⚔️ 군사비 증가: 이민족과의 전쟁 비용이 계속해서 늘어났습니다.
📜 세계 최초의 '부자세'와 그 실패
위기 상황에서 상홍양은 더 과감한 정책을 도입합니다. 바로 '산민전(算緡錢)'이라는 일종의 재산세였죠. 현대의 부유세와 비슷한 개념으로, 자산가들에게 재산을 신고하게 하고 그에 따라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 대규모 상인, 수공업자, 고리대금업자: 자산의 10% 과세
- 소규모 상인: 자산의 5% 과세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놀랍게도(?) 현대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 🙈 재산 은닉: 부자들은 재산을 숨기기 시작했습니다.
- 🚫 세금 회피: 자발적인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 💸 소비 증가: 세금을 내느니 차라리 돈을 써버리는 행태가 나타났습니다.
정부의 대응도 현대와 비슷했습니다. 재산을 은닉한 사람에게는 1년간 변방 유배형, 미신고 재산은 전액 몰수라는 강력한 처벌을 내세웠습니다. 심지어 숨겨진 자산을 신고하는 '세파라치'에게 몰수 재산의 절반을 보상하는 제도까지 도입했죠. (현대의 탈세 신고 포상금 제도와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 술 독점까지: 과도한 세원 확대의 결말
그럼에도 재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상홍양은 더 나아가 술까지 국가 독점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원료부터 생산, 유통까지 전 과정을 국가가 관리하는 방식이었죠.
이때 동중서(董仲舒)를 비롯한 유학자들이 드디어 격렬히 반발했습니다. "국가가 생활필수품을 매개로 백성과 이익을 다투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명분을 내세웠죠. (고대 중국에서 술은 의례용으로도 중요했고, 실제로 필수품에 가까웠습니다)
💫 상홍양의 비극적 결말
세금 증가는 경제 왜곡을 가져왔고, 사람들의 저항은 커져갔습니다. 결정적으로 보호자였던 한 무제가 사망하면서 상홍양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습니다. 결국 그는 기원전 80년, 75세의 나이로 모반죄에 몰려 멸족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
상홍양의 이야기는 2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을 던집니다:
- 세금 증가는 항상 저항을 불러온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세금을 올리면 사람들은 회피 방법을 찾습니다.
- 재정 확충과 지출 통제는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수입이 늘자마자 지출도 늘리는 패턴은 고대나 현대나 마찬가지입니다.
- 경제 인센티브는 정책의 의도와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 부자세를 도입했더니 저축과 투자 대신 소비를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 조세 정책은 정치적 지지 없이는 지속되기 어렵다: 한 무제라는 강력한 후원자가 사라지자 상홍양의 정책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 오늘날의 의미
상홍양의 사례는 현대 정부가 직면한 딜레마를 예견하고 있습니다.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부유세나 자본이득세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저항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세금을 올리면 자본 도피가 일어나고, 경제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는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국가와 시장 사이의 긴장 관계, 공정한 세금과 경제적 효율성 사이의 균형은 인류가 계속해서 풀어야 할 난제인 것 같습니다. 상홍양의 비극적 결말은 이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입니다.
어쩌면 조세 정책에 관한 한, 인류는 200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비슷한 순환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상홍양이 오늘날 재무장관이 되어도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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