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에게
한 줄기 푸른 산 아름다운 경치
조상의 땅 후손이 물려받는구나.
후손들아 얻었다고 기뻐만 마라.
다시 거둬들일 사람 뒤에 있느니.
書扇示門人
一派靑山景色幽 前人田地後人收.
後人收得休歡喜 還有收人在後頭.
* 범중엄(范仲淹, 989~1052) : 북송(北宋) 때의 정치가이자 문인.
🏞️ 경치 너머 미래를 보는 안목
범중엄(范仲淹, 989~1052)의 시 '제자에게'는 단순한 경치 묘사가 아닌 깊은 인생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한 줄기 푸른 산 아름다운 경치 조상의 땅 후손이 물려받는구나. 후손들아 얻었다고 기뻐만 마라. 다시 거둬들일 사람 뒤에 있느니.
북송(北宋) 시대의 뛰어난 정치가이자 문인이었던 범중엄은 이 시를 통해 제자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전합니다. 아름다운 산수를 보며 단순히 눈앞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조상에게서 물려받아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이라는 순환의 관점을 일깨웁니다. 원제 '서선시문인(書扇示門人)'은 '부채에 적어 제자에게 보이다'라는 뜻으로, 일상 속에서도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게 돕는 스승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 명문가의 교육 철학: 검소함과 겸손함
스스로 낮추는 삶의 자세
범중엄은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개가한 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남다른 노력으로 재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검소하게 살았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조상과 후손을 동시에 생각하는 넓은 도량을 지녔습니다. 인재 양성과 부국강병을 위한 경력신정(慶曆新政)을 추진하는 등 개혁 정신도 지녔습니다.
'호걸'보다 '삼가는 선비'를 지향하라
조선의 명신 신숙주는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라는 가훈에서 자녀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호걸이 되는 일은 내가 실로 바라는 바가 아니다. 다만 너희가 이 가훈을 지켜서 날마다 삼가고 삼가 '삼가는 선비'로 불리며 선조에 부끄러움을 끼치지 않게 되기를 원한다."
호걸은 누구나 꿈꾸는 남자의 이상이지만, 신숙주는 아들에게 일세를 호령하는 호걸이나 재주 높은 인물이 되려 하지 말고 자신을 낮추고 비워서 학문에 정진하는 사람이 되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난세를 헤쳐온 아버지의 쓰라린 경험이 그대로 담긴 가르침입니다.
🖋️ 귀양지에서도 이어진 자녀 교육
고산 윤선도의 간곡한 당부
고산 윤선도는 74세 때 함경도 귀양지에서 집안의 장래를 걱정하며 큰아들에게 간곡한 당부를 담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보물 제482호로 지정되어 해남 녹우당에 보관된 이 편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조언했습니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으니 사람의 일도 늘 가득 찼을 때를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득 참은 덜어냄을 부르고 겸손함은 유익함을 준다는 지극한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뼈에 새기라."
면앙정 송순의 교훈
면앙정 송순은 천재지변으로 민심이 흉흉할 때 친구들과 술판을 벌인 자식들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머릿속에 살다 보니 빛이 검어지고, 사향노루는 잣을 따 먹는 동안 배꼽에 잣 향내가 스미는 것처럼 사람도 가까이하는 사람에게 물이 드니 부디 유익한 벗을 사귀라."
👨👩👧👦 가문을 이어가는 지혜
'겸(謙)' 돌림자로 일깨운 가르침
숙종 때 남인과 노론의 당쟁에 휘말려 유배지 진도에서 사약을 받은 김수항은 죽기 전 "언제나 겸퇴의 뜻을 지니고 집안에 독서하는 종자가 끊이지 않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생전에도 그는 손자들의 이름에 '겸(謙)'을 돌림자로 써서 자신을 낮추고 지나침을 경계하라는 뜻을 가르쳤습니다.
명문가 자녀 교육의 본질
명문(名門)이나 명가(名家)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 아버지들은 자녀교육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훌륭한 가르침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마음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줍니다.
김수항의 집안은 4대가 연거푸 형벌로 죽는 모진 역경 속에서도 아버지의 당부를 지켜 가문을 되살렸지만, 신숙주의 넷째아들은 '호걸 욕심'을 부리며 서른도 안 돼 재상 자리에 올랐다가 과욕으로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훌륭한 유훈보다 그것을 실천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사례입니다.
🔄 시대를 뛰어넘는 자녀 교육의 지혜
옛사람의 자식 교육은 꼼꼼하고도 따끔했습니다.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가면 호되게 나무라고, 벼슬길에 나설 때는 더욱 겸손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의 핵심은 '겸손'과 '절제'로, 어떤 시대에도 통하는 보편적 가치입니다.
빼어난 경치를 보고도 후손을 먼저 생각하는 범중엄의 시선처럼, 명문가들은 눈앞의 성취보다 대를 이어 지속가능한 가문의 번영을 위해 자녀들에게 겸손과 절제의 가치를 심어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백 년을 이어온 명문가의 교육 비결이 아닐까요?
📝 확인학습 문제
다음 중 명문가의 자녀 교육에 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범중엄은 아름다운 산수를 보며 조상과 후손의 연결고리를 생각했다.
② 신숙주는 아들에게 '호걸'보다는 '삼가는 선비'가 되라고 가르쳤다.
③ 고산 윤선도는 귀양지에서도 자녀에게 겸손함과 절제를 강조했다.
④ 김수항은 손자들의 이름에 '겸(謙)'을 돌림자로 써서 과감한 도전 정신을 일깨웠다.
⑤ 면앙정 송순은 자식들에게 '유익한 벗'을 사귀라고 충고했다.
정답 및 해설
정답: ④
김수항은 손자들의 이름에 '겸(謙)'을 돌림자로 써서 자신을 낮추고 지나침을 경계하라는 뜻을 가르쳤습니다. 이는 과감한 도전 정신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과 절제의 자세를 강조한 것입니다. ①번은 범중엄이 시에서 산수의 아름다움을 보며 조상에게서 물려받아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이라는 순환의 관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적절합니다. ②번은 신숙주가 『호걸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라는 가훈에서 '삼가는 선비'가 되라고 가르친 것이 맞습니다. ③번은 고산 윤선도가 귀양지에서 큰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득 참은 덜어냄을 부르고 겸손함은 유익함을 준다"고 가르친 것이 맞습니다. ⑤번은 면앙정 송순이 자식들에게 "사람도 가까이하는 사람에게 물이 드니 부디 유익한 벗을 사귀라"고 충고한 것이 맞습니다.
'읽을거리 > 교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할아버지 패러독스란? 시간여행의 모순과 다중우주 이론 완벽 해설 🕰️ (12) | 2025.03.15 |
---|---|
셰익스피어의 불멸의 사랑: '소네트 89'에 담긴 지고지순한 헌신 (131) | 2025.03.14 |
용기의 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1%의 도전 정신 (18) | 2025.03.14 |
📚고진감래(苦盡甘來): 노력 끝에 찾아오는 달콤한 성취의 지혜 (21) | 2025.03.04 |
📜 옛사람들의 이름 이야기: 자(字), 호(號), 아명(兒名)의 세계 (18) | 2025.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