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가시지 않은 이른 봄, 가장 먼저 붉은 열정으로 봄소식을 알리는 꽃이 있습니다. 바로 동백꽃인데요. 유난히 두꺼운 꽃잎에 꿀을 가득 머금고, 새하얀 눈밭 위에서도 당당히 피어나는 모습은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이 동백꽃에게는 아주 특별한 별명이 있다고 해요. 바로 '두 번 피는 꽃'이라는 애칭인데요. 나무에서 한 번, 그리고 땅에 떨어져서 또 한 번, 그 아름다움을 뽐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과연 동백꽃은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기에 이런 아름다운 별명을 얻게 된 걸까요? 오늘은 이수복 시인의 애틋한 시 한 편과 함께 동백꽃의 숨겨진 매력 속으로 빠져보시죠! ✨
시인의 눈물 적신 붉은 꽃잎, 이수복의 '동백꽃' 이야기 😢
먼저 이수복 시인의 시 '동백꽃'을 잠시 감상해 볼까요?
동백꽃
동백꽃은
훗시집간 순아 누님이
매양 보며 울던 꽃
눈 녹은 양지쪽에 피어
집에 온 누님을 울리던 꽃.
홍치마에 지던
하늘 비친 눈물도
가녈피고 씁쓸하던 누님의 한숨도
오늘토록 나는 몰라 …
울어야던 누님도 누님을 울리던 동백꽃도
나는 몰라
오늘토록 나는 몰라 …
지금은 하이얀 촉루가 된
누님이 매양 보며 울던 꽃
빨간 동백꽃.
이수복(1924~1986) : 전남 함평 출생.
1954년 서정주 추천으로 등단. 시집 <봄비> 출간.
시 속에서 동백꽃은 '훗시집간 순아 누님'의 눈물과 한숨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훗시집'은 처녀가 아닌 여인이 재취로 가거나 후처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훗시집' 가는 누님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홍치마에 지던/ 하늘 비친 눈물도/ 가녈피고 씁쓸하던 누님의 한숨도"라는 구절에서 그 애잔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동백꽃은 질 때 꽃잎이 한 장 한 장 흩날리는 것이 아니라, 꽃봉오리째 '뚝'하고 떨어지죠. 마치 한 많은 누님의 눈물방울처럼, 혹은 차마 말 못 할 슬픔이 응축된 것처럼 말입니다. 시인은 그런 누님의 깊은 슬픔을 "오늘토록 나는 몰라…"라며 짐짓 모르는 척하지만, 그 속 깊은 마음이 오히려 우리 가슴을 더욱 먹먹하게 만듭니다. 서정주 시인도 이 시를 추천하며 "상(想)에 헷것이 묻지 않은 게 첫째 좋고 그 배치와 표현에도 성공했다"고 극찬했을 만큼, 동백꽃에 어린 슬픔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작품입니다.
툭, 떨어져도 여전히 아름다운! 동백이 '두 번 피는 꽃'인 진짜 이유 🧐
이처럼 시 속에서는 슬픔의 매개체로 그려졌지만, 동백꽃이 '두 번 피는 꽃'이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그 독특한 낙화 방식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동백꽃은 시들기 전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꽃송이 전체가 툭 하고 떨어집니다. 그렇게 땅에 떨어진 동백꽃은 마치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듯 한동안 그 붉은 자태를 그대로 유지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 한 번, 그리고 땅에 떨어져서 또 한 번, 마치 두 번 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이죠. 열정적인 붉은색과는 달리, 꽃이 하늘을 보지 않고 옆이나 아래를 향해 다소곳이 피는 모습은 겸손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장렬하게 떨어져 마지막까지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모습, 정말 매력적이지 않나요?
알고 보면 쓸모 만점! 향기 대신 꿀을 품고, 기름까지 내어주는 동백나무 🌳
동백나무는 사실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우리 생활에 유용한 점도 참 많답니다. 우선 동백꽃은 향기가 거의 없는 대신, 꽃잎 속에 달콤한 꿀을 잔뜩 머금고 있는데요. 이 꿀은 추운 겨울, 먹이가 부족한 동박새와 같은 텃새들에게 아주 중요한 식량이 되어줍니다. 동박새는 동백꽃의 꿀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꽃가루를 옮겨주는 고마운 중매쟁이 역할도 하고요!
또한, 동백나무는 예로부터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여겨져 혼례식 초례상에 송죽 대신 동백나무 가지를 꽂기도 했습니다. 사철 푸른 잎처럼 변치 않는 사랑과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는 의미였죠. 열매에서 짜낸 동백기름은 옛 여인들의 머릿결을 윤기 있게 가꿔주는 천연 헤어 에센스였고, 단단한 나무는 빗이나 가구, 심지어 병마를 막아준다는 망치를 만드는 데도 쓰였다고 하니, 정말 버릴 것이 하나 없는 나무입니다.
잠깐, 김유정 소설 속 '노란 동백꽃'은 진짜 동백이 아니라고? 🤫 (feat. 생강나무)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 우리가 잘 아는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에 등장하는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던 노란 동백꽃, 기억하시나요? 사실 이 소설의 배경인 강원도 지역에서는 동백나무가 자라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김유정 소설 속 '노란 동백꽃'은 실제로는 이른 봄 노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해요. 정선아리랑에 나오는 '싸리골 올동백' 역시 생강나무를 의미한다고 하니, 같은 이름이라도 지역에 따라 다른 식물을 가리킬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다시, 동백꽃을 바라보며 🤔
이처럼 동백꽃은 시린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다가, 가장 빛나는 순간 미련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는 땅 위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죠. 어쩌면 '두 번 피는 꽃'이라는 이름에는, 한 번의 삶이 끝나는 지점에서 또 다른 의미와 아름다움이 시작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요?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붉은 희망을 피워 올리는 동백꽃처럼,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가고, 또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있기를 응원해 봅니다. 혹시 주변에 동백꽃 명소가 있다면, 낙화마저 아름다운 그 모습을 직접 감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여수 오동도, 강진 백련사, 거제 지심도, 통영 장사도, 그리고 가장 늦게까지 피어있는 선운사 동백까지,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동백꽃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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